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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내가 한 짓들(3) : 아 불쌍한 내 왼손이어! 이런 사람들도 있다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6. 2. 2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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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내가 한 짓(3)

         -아 불쌍한 내 왼손이어! 이런 사람들도 있다

 

설 연휴 직전 울 집 거실에 이상한(?) 카톤 박스가 세 개 왔다.

택배인가 하고 살펴보니 아니다.

겉에는 대기업의 상표가 찍혀 있고, 들어보니 무게는 의외로 가볍다.

 

궁금해하는 내게 아내가 결론부터 꺼내든다.

그게 우리가 설 연휴 중에 반드시 해내야 할 과업이란다.

그러면서 자초지종을 잇댔다.

 

00엄마가 있다.

아내와 더불어 온갖 바깥 행사에 함께하는, 씩씩한 중년.

매주 2회 독서 지도를 두 학교에서 하고,

장애인학교에도 같이 나가고, 격주로 음악 재능기부를 하는

동아리에도 고정 멤버다. (그녀의 딸은 올해 예고로 진학했다.)

또 다른 두 개의 야간 공부 동아리 활동에서도 대장 노릇을 한다.

 

그런 이가 하는 가정 부업 중 하나란다.

그녀는 우리 집의 두 계좌보다도 훨씬 더 많은 곳에

월정액 자동 이체 기부를 하고 있는데

그걸 이 가정 부업을 통해 마련한단다.

그녀의 남편은 대기업의 부장이지만

그가 애써서 벌어다주는 돈에는 한 푼도 손을 안 대기 위해.

 

그런데 이번에 맡은 것은(매번 작업 아이템이 바뀐단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설 연휴의 마지막까지 일을 끝내야

그 다음날로 연기된 납품 기한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꼭 해내야 하는 일인데,

워낙 수량이 많아서 몇 집으로 나누어 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부탁해 오길래

식구 수대로 세 상자만 받았단다.

 

                              *

아내의 설명에 나는 찍소리도 못했다.

아니, 내가 몰랐던 그녀의 속 생활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고 또 놀랐다.

 

그 뒤로 설날 하루를 빼고는

(아니, 설날도 집으로 돌아온 뒤, 저녁엔 작업했다.)

그 과업(?)에 매진했다. 내게도 한 상자가 배당된 까닭에.

 

바로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이 그것.

1회용 의료용품으로 산소호흡기 등을 착용하거나 할 때

코를 고정시키는 집게라는데, 작업 내용은 코에 닿는 부분의 양쪽에

동그란 스펀지 하나씩을 부착하는 일.

기계 작업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어서 사람 손으로 해야 한단다.


 

손쉬워 보이는 일이지만, 작업 단계는 꽤 복잡.

우선 상자 속에 섞여 있는 것들을 꺼내어

작업대 위에 쏟아놓고 두 가지 타입(손잡이의 주름 유무)을 구분하면서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것들은 작업하기 좋게 분리.

 

그리고 스펀지 스티커가 붙어 있는 부분을 작업하기 좋게 잘 접기.

이어서 하나씩 떼어 붙이는데

그때마다 왼손으로는 집게를 잡고 벌려 주어야만 한다.

오른손이 들어가 작업하기 좋도록.

 

맨 처음엔 하나를 끝내는데, 스펀지를 붙이는 작업에만 10초 이상 걸렸다.

붙여지지 않은 부분과 1밀리 정도의 차이밖에 안 날 정도로

정확하게 부착해야 하는 작업이라서.

첫 한 시간엔 100개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손에 익자 한 시간에 150개 정도를 해낼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첫날 4시간 정도 작업을 하고는

아이고 무릎이야 소리는 기본으로 나왔고

자고 나니 매번 집게를 눌러 벌린 왼손 엄지와 검지가 부어 있었다.


                                      * 

결과... 연휴 4일 동안 틈틈이 죽어라 했다.

우리 때문에, 우리 집은 나 때문에, 납품 시한을 지키지 못해서는 안 되기에.

드디어 내 몫이 끝나자 우리 집 몫도 끝났다.

 

한 상자에 몇 개나 들었는지 난 잘 모른다.

대충 짐작하기에 (작업 능률을 역산해 볼 때) 3500~4000개 정도가

들어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면 그 4일 동안 내가 열 댓 시간을 죽어라 한 일이

벌이로 치면 7~8만 원쯤 된다. 개당 20원씩이라고 하니까.

6천 원대의 최저 시급으로 계산해도 10만 원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 알바 시급도 못되는 일을 한 셈이다.

 

그 뒤 한 해 네 번 정도는 보는 친구와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다.

여느 때 같으면 아무 생각도 없이 그 집의 고정 메뉴인

한식 정식 2만 원짜리를 시켰을 텐데

그날은 내가 우겨서 점심 정식 11000원짜리를 시켰다.

 

그런 작업을 한 후에, 한 병에 1100원인 막걸리를 사러 나가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그 1100원을 벌려면 그 손 아픈 집게 작업을

55개를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맴돌았던 기억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두 가지는 당분간 잊지 않을 듯하다.

<굿네이버><유니세프> 등에 월정액 2~3만 원씩의 기부를 하고 있는 이들은

부자라서 하는 게 아니라, 몸수고를 아끼지 않고라도 해내려는 마음을

지닌 이들이라는 것과

단돈 천 원이랄지라도 그 액수의 뒤꼍에는

몸 아픈 고통, 뼈가 시리는 아픔들도 담겨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말이다. [Feb. 2016]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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