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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격랑도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밤잔물이 된다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6. 2. 2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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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격랑도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밤잔물이 된다

 

어제 오전 책 하나를 받았다. 내 저서 중 하나의 개정판.

지난 1월 네 차례에 걸친 교정 작업에 보름 이상을 바친 책.

다른 원고 작업 시간에 쪼들리고 있을 때였지만,

그 교정을 다른 이에게 맡길 수도 없는 책자였다.

 

반갑게 받아든 책을 살펴보다가... 시쳇말로 머리 뚜껑이 열렸다.

말도 안 되는 실수들이 보여서다.

가나다순으로 편제된 것이어서 찾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

책의 오른쪽 옆면에 그 색인 표지를 넣었는데

그게 전혀 구분이 안 되게 한 줄짜리 수평선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

 

그뿐이 아니라, 본문과 부록 사이에 간지 한 장 들어가 있지 않았다.

속표지에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그처럼 느닷없이 시커먼 색깔의 내용물을 조금은 덜 거북스럽게도

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머리말 부분의 행간 간격도, 강조 활자 사용분도

죄다 맘에 들지 않고...

 

책을 대하는 독자들은 책 대신 저자를 욕한다.

발간 책자 모두를 회수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출판사 직원들에게 전화했다.

퍼부었다.

 

저녁 때... 집사람에게 책을 보여 주었다.

한참 뒤, 답이 왔다.

- 어쩌겠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문제 삼으면 직원들도 다칠 거고.

  게다가 내용상의 문제가 아니고,

  어찌 보면 꾸밈과 마무리상의 문제일 뿐인데... 

 

하룻밤이 지났다.

늘 그렇듯이 새벽에 눈을 뜨고, 일 시작 전,

1층 쉼터로 내려가 담배 한 대를 피워물었다.

가까운 학교 운동장을 거쳐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 여명과는 한 뼘쯤의 거리를 두고 있는 하늘로.

그리고 거기서 다시 옆으로 훑었다.

 

하늘은 넓었다.

온 하늘을 훑으려니 내가 몸을 돌려야 했다.

그래도 기둥 사이에 일부 하늘이 가려졌다.

쉼터를 벗어나 정문 계단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 몸을 한 바퀴 돌리면서 하늘을 훑었을 때야 비로소

온 하늘이 내게 안겨 왔다.

 

아침이 되었을 때 어제 내가 괴롭힌 출판사 직원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분노의 격랑도 하룻밤이 지나고 나면 밤잔물*이 된다.

이게 오늘의 내 심정. 어젠 미안했네...”로 시작되는 문자를. [Feb. 2016]

-溫草

 

*밤잔물 : 밤잔숭늉. ‘밤을 지낸 자리끼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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