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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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사장과 술자리를 했다.
두 건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서다.
하나는 작년에 원고를 넘긴 건이고
하나는 내가 원고 독촉에 몰리고 있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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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지체 사유를 이야기하다가
내가 농 삼아 백수의 과로사 얘길 했다.
일을 할 만하면 친구들이 찾아오거나 불러낸다고.
사실 어느 땐 친구나 방문 예정객에게 거짓말까지도 한다.
이미 술 한잔을 한 뒤라 불콰해진 채 서울에서 걸려오는 친구 전화나
독자라면서 몇 번 메일이 오간 뒤
자세한 얘길 듣고 싶다며 불쑥 찾아오는 이들까지
죄다 자리에서 일어나 맞을 수는 없으므로.
(그래서 지금은 내 스스로 한 달 최대 외출 회수를 6회 이내로 한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중 3~4회는 고정되어 있다시피 한 스케줄.
넘치면 무조건 다음 달로 미룬다.)
그러자 그는 말했다.
‘엄청 행복하신 겁니다’
*
서너 달 전인가
번역서가 백여 권을 향해가는 사십 대가 말했다.
술 한잔하고 싶을 때 전화로 불러내어 함께할 친구가 전혀 없단다.
(그때 속으로 엄청 놀랐다. 지금도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집에서 혼자 먹다가, 단란주점 출입을 시작했다.
어느 날 단란주점에 가서 도우미 여인을 불러 먹었는데
그 영수증 관리를 잘못해서 마눌한테 딱 걸렸는데...
이혼 얘기까지 나왔고, 부인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이혼을 꿈꾸고 있었더라나.
결국 사정 사정해서 한 지붕 두 방 살림으로 미봉.
그 결말은 내가 이미 예측하고 있던 바였다.
사내가 자기 방어용으로 늘어놓은
예전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단순히 그날의 카드 영수증이 문제가 아님을 눈치 채고 있었다.
남편의 불안정한 벌이에 불안해진 그의 아내가
H리에 0000 좌판을 내자 그 동네의 거물급이 스폰서가 되어
그녀에게 승용차까지 사줄 때부터 사달이 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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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처음 스마트폰으로 여기에 글을 써 본다.
키보드로 얼른 두들기는 시간의 열 배도 더 들어
엄청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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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똑딱거리는 까닭ᆞ
낼 새벽에는 이런 낙서를 할 시간도 없고
하지도 못한다. 잊으므로, 잊고 싶은 생각들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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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파주로 돌아가는 직행버스는 50분이나 달린다.
똑딱이 글쓰기도 너끈히 품어주는 여유 있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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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옆자리에서 2~3분 간격으로 마른기침을 해대는 젊은 아가씨에게
정색하고 나긋나긋 조리 있게 말한다.
꼭 대학병원급의 병원으로 가 보라고.
새벽에도 하고 잘 때도 하는 마른기침.
지난 한 달 반 동안 계속했고
남자친구가 좁은 방에서 줄곧 담밸 피워 왔다는 얘길 토설한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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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목숨을 근저당 설정한 뒤
그 대출금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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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번역가인 너나
내 옆의 이름 모르는 그대나
비록 잠시 자리를 함께하기는 해도
잠깐 동행일 수는 있어도
인생엔 연대보증이 없다.
친구가 엄청 소중해지는 시간이다. [Mar. 2016]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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