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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神曲)>과 아내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6. 3. 3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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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테의 초상. 보티첼리 작


단테의 <신곡(神曲)>과 아내

 

오늘 아침, 집을 나서는데

마님 왈, 도서관에서 단테의 <신곡>을 꼭 빌려오란다.

대뜸 누가 읽을 거냐고 물었다.

마마님, 곧 울 집 마님이시란다. 허걱!

 

물은 이유는 하나.

<신곡>은 내가 청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도전했지만 완독해내지 못했다.

네 번씩이나 시도해서 손든 유일한 책이다.

 

대학생 때, 세계 명작이라는데 그까짓 것(?)도 안 읽어서야... 하며

도전했지만 10쪽도 못 나갔다.

원문보다도 각주가 더 많았고, 각주 없이는 다음 줄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본문 글자 크기가 지금 기준으로 10폰트도 안 되었던 듯한데,

그게 빼곡... 두께도 얇기나 한가.

 

모 신부님이 정성 들여 라틴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

당시 명품 ​번역으로 꼽히던 책자였다.  

60년대에 을유문화사에서 출간한 도서 중 지금도 명저의 반열에 올라 있는 책.

 

군 시절에 다시 도전했다. 심심했지만 놀면 뭐하나.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을 외치며...

하기야, 군인정신이 투철해서 지배(紙背)까지도 철()할 때였다.

50쪽도 못 나갔다.

 

해외 근무 시절, 다시 심심한 덕 좀 보자고 달려들었다.

중간에 접었다.

각주를 빼고 읽으려던 게 무모한 짓이라는 것만 알았다.

 

2000년 초에 다시 도전했다.

중간에 완독 포기! 소리만 크게 외치고 책을 덮었다.

(그래도 그때까지 어딜 가든 그 책을 품고 다닌 게 기특하긴 하다! )

 

그 바람에 나는 마지막 편인 연옥을 제대로 맛도 못 보았으므로,

내겐 연옥이란 게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단테는 내게 웬수덩어리가 되었다.


하여, 그의 이름이 단테 알레기에리인데 성을 자르고 부른다는 거.

이태리에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 중에 그런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

(예를 들면, 미켈란젤로만 해도 di 뒤에 뭐라고뭐라고 한참 붙다가 Simoni로 끝난다)

문학과 정치 양쪽에 발을 들여 놓았던 불우한 사람이란 거.

동가숙 서가식을 하면서도 뇨자덜한테는 인기 짱이었다는 것.

(내 보기엔 별로 잘 생기지 않았더만. 당시엔 매부리코가 인기였다니 할 수 없지 뭐...
 나중엔 납작코가 인기짱인 세상이 올지도... ㅎㅎㅎ)

국외로 추방되어 떠날 때도 책을 한 수레 싣고 간 사람이라는 것.

<신곡>을 이태리말로는 La Divina Commedia*라고 한다는 것...

따위만 꿰게 되었다.


*나중에 이태리 녀석 삼총사를 친구로 두게 되어

  그들에게 물었다. <신곡> 끝까지 읽어봤느냐고. 죄다 도리도리.

  그중 둘은 ‘-자 붙은 녀석이고, 또 하나는 ‘-자 붙은 녀석들.

  그날 우리들은 무식한 <신곡> 동기생이 되어 힘차게 건배 한잔을 더했다.


하기야 공부하기 싫어하는 놈이 책에 침만 잔뜩 바르고

게으른 년이 삼 가래 세고 게으른 놈이 책장 센다*’.

*게으른 년이 삼[]을 찢어 베를 놓다가 얼마나 했는지 헤아려 보고,

  게으른 놈이 책을 읽다가 얼마나 읽었나 헤아려 본다는 뜻으로,

  게으른 사람이 일은 안 하고 빨리 그 일에서 벗어나고만 싶어 함을 이르는 속담.

 

도서관에 와서 <신곡>을 찾아보니

세 권짜리 상세 번역본은 마침 대출 중.

대신 산문 형식으로 아주 쉽게 풀어 쓴, 얄팍한 단행본이 있다.

야호!

울 마눌님은 나와 달리 이제 앞으로

<신곡>을 완독했다고 하실 수 있을 듯하다.

나의 슬픔은 아내의 행복일진저!

 

혹시 몰라서, <사랑에 빠진 단테>도 함께 빌렸다.

단테 평전으로는 손꼽을 만한 A.N. 윌슨의 노작.

마마님께오서, <신곡> 밑천이 달리게 되면

이 단테 평전으로 때우시라는 뜻에서. ㅎㅎㅎ

 

[피에쑤] 내 좁은 소견으로 말하자면, <신곡>보다는

            단테를 연구하는 쪽이 더 남는 장사일 듯하다.

            중세 유럽 문학을 필수로 공부해둬야 하는 이가 아니라면. ㅎㅎㅎ

                                                   [Mar. 2016]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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