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띨띨이 대취하다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6. 4. 7.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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띨띨이 대취하다

 

지난 월요일, 집 근처의 도서관 휴관으로 교하도서관으로 갔다.

점심 전, 전화가 왔다.

오매. 이게 누구여?

 

어쩌다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하면 소리샘 어쩌고가 답이고

그런 소리가 두 번 들릴 때까지도 답이 없는 친구.

부재중 전화 표지가 떠오르련만 답도 없는 친구.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식당 주소 좀 찍어 보내라 했더니만

한 달 반 만에 답이 오는 친구.

 

그렇다고 천릿길이나 떨어져 있는 건 아니다.

파주로 옮겨 오자마자 여섯 해 전 장모님을 모시고 갔다가

약간 쉰내가 나는 듯한 국을 먹고 배탈까지 났던 곳인지라

식구들을 끌고 가기에는 좀 그런

대형 쇠고기 정육 식당을 일산 구산동에서 하고 있다.

 

그 친구하고는 사연이 많다.

30여 년을 쌓아 왔으니 그럴 수밖에.

해외 지점 근무 중 뒤늦게 합류한 1~2살 아래의 직장 동료로 만나서

근무 국가가 바뀌어도 다시 만나고

소속사들이 바뀌어도 만났다.

부친상 모친상은 함께 치렀다.

 

그 친구 형은 나보다 학번이 하나 위이고

동생들은 당연히 제법 연하들.

K대 법대를 나온 동생이 행정고시에 합격했다며 좋아하던 날은

내가 그를 위해 술 한잔을 샀고

Y대 국문과를 나온 형이 첫 시집을 냈던 소식을 전하면서는

그가 술을 샀다.


서울로 돌아왔을 때 그의 형은 요절 시인이 되었고,

형수는 청상과부가 되어 두 아이를 키워냈다.

행정고시 출신의 동생은 유명세를 탄 서울시 국장을 거쳐

지금은 서울의 모 구청장.

S대 상대를 나온 막내 동생 역시 삐삐 5인방 회사를 차려 잘 나갔다.

 

그런데... 점심시간을 피해 좀 늦게 찾아가 보니

상찬받는 구청장 동생 외에는 멀쩡한 사람이 없다.

신용카드 조회기까지 개발했던 막내 동생은 5년째 병원 생활.

그동안 어찌 전화 답 한 번 없었느냐고 하자

그 친구 왈, 내 꼬라지가 이래서...

 

그 친구는 꼬라지라고 표현해야 어울릴 정도로

어설픈 웃음을 백발 위로 날리고 있었다.

지금 가진 것 톨톨 털면 빚잔치하기 딱 맞다며.

죽기 전에 빚을 남기고 가진 않으니 다행이라며...

고향 동네로 귀촌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란다.

 

그날 집으로 7시쯤 돌아왔을까.

내가 현관 앞에서 키 번호를 더듬고 있더란다.

요행히도 그게 울 집 마마님 눈에 띄어 무사 입성.

다음날 8시까지 자고 나서, 그래도 도서관 출근은 했다.

 

내 평생 술 마시고 문 앞에서 정신을 놓아본 적은 없었다.

누가 날 그렇게 술을 먹였을까.

무엇이 날 그토록 취하게 만들었을까.

 

주방에서 일하던 물기 묻은 손을 다 닦지 못한 채

두 손으로 내 한 손을 반기던 그 친구 아내의 환한 웃음이

그 친구의 잿빛 백발이

너른 식당이 휑뎅그렁하게 보이던 풍경이...

요절한 그의 형과 오랜 병원살이의 동생 그림이

지금도 자꾸만 겹치고 되감겨 온다. [Apr. 2016]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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