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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반에 그네 타는 여자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6. 4. 9.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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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반에 그네 타는 여자

 

오늘 아침 3시 반.

1층 쉼터에 내려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는데

놀이터의 의자 그네가 흔들리며 콧노래가 들린다.

이 시각에 웬?

 

다가가 보니 내 아는 처자다.

나이 불명하고 성명 불상한 신문/우유 배달녀.

그녀는 가끔 새벽에 날 대하면서도

날 제대로 잘 기억하지 못한다.

지적장애인!

 

그래도 새벽마다 아파트를 찾아다니며

배달을 하는 게 신통하기 그지없어

눈에 띨 때마다, 내 눈길이 오래 그녀에게 사로잡히곤 했다.

 

다가가 말했다. 농 삼아.

-배달부터 하고 놀아야쥐...

처자의 대답이 나오기 전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더니

중년 여인이 나오며 말한다.

-여기 신문은 엄마가 할게.

 

까닭도 모르게 반가워, 다가가 말했다.

-따님이세요? 얼마나 신통한지 모르겠어요.

  정말 신통해요. 신통합니다. 신통해요...

미소까지 얹힌 곱상한 중년 여인에게서 건너오는 대답.

-. 먹고 살아야 하니 저도 일해야 하죠.

  일할 줄 알아야 하죠...

 

아파트 계단을 올라오면서 문득

어째서 다른 말로 칭찬을 하지 못하고

내내 신통하단 말만 되풀이했는지, 내가 답답해졌다.

더 멋진 말로, 더 근사한 말로, 더 크게 칭찬할 수도 있었는데.

 

우린 우리 주변에서 눈에 덜 띠는,

혹은 가려진 채로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들의 스승임을 가끔은 잊고 산다.

 

,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오늘은 다른 날처럼 늦게까지 7시를 넘겨 책상 앞에 있을 수가 없다.

사전 투표 투표소 일이 있다.

5시 전에 나서야 한다.

사고를 당해 자리를 비우게 된 사람의 땜질용으로

내가 갑자기 징발되었다.

여러 해 전 투표 관리 업무 교육을 받은 덕분(?).

 

아침 6시에 투표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하려면

우리는 5시까지는 도착해야 한다.

오늘 아침의 처자처럼

조금 더 일찍 일어나 문을 여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의 문이 더 크게 활짝 열린다.

사립문, 교문, 세상의 문에서부터 마음의 문까지도. [Apr. 2016]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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