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반에 그네 타는 여자
오늘 아침 3시 반.
1층 쉼터에 내려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는데
놀이터의 의자 그네가 흔들리며 콧노래가 들린다.
이 시각에 웬?
다가가 보니 내 아는 처자다.
나이 불명하고 성명 불상한 신문/우유 배달녀.
그녀는 가끔 새벽에 날 대하면서도
날 제대로 잘 기억하지 못한다.
지적장애인!
그래도 새벽마다 아파트를 찾아다니며
배달을 하는 게 신통하기 그지없어
눈에 띨 때마다, 내 눈길이 오래 그녀에게 사로잡히곤 했다.
다가가 말했다. 농 삼아.
-배달부터 하고 놀아야쥐...
처자의 대답이 나오기 전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더니
중년 여인이 나오며 말한다.
-여기 신문은 엄마가 할게.
까닭도 모르게 반가워, 다가가 말했다.
-따님이세요? 얼마나 신통한지 모르겠어요.
정말 신통해요. 신통합니다. 신통해요...
미소까지 얹힌 곱상한 중년 여인에게서 건너오는 대답.
-네. 먹고 살아야 하니 저도 일해야 하죠.
일할 줄 알아야 하죠...
아파트 계단을 올라오면서 문득
어째서 다른 말로 칭찬을 하지 못하고
내내 신통하단 말만 되풀이했는지, 내가 답답해졌다.
더 멋진 말로, 더 근사한 말로, 더 크게 칭찬할 수도 있었는데.
우린 우리 주변에서 눈에 덜 띠는,
혹은 가려진 채로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들의 스승임을 가끔은 잊고 산다.
참,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오늘은 다른 날처럼 늦게까지 7시를 넘겨 책상 앞에 있을 수가 없다.
사전 투표 투표소 일이 있다.
5시 전에 나서야 한다.
사고를 당해 자리를 비우게 된 사람의 땜질용으로
내가 갑자기 징발되었다.
여러 해 전 투표 관리 업무 교육을 받은 덕분(?)에.
아침 6시에 투표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하려면
우리는 5시까지는 도착해야 한다.
오늘 아침의 처자처럼
조금 더 일찍 일어나 문을 여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의 문이 더 크게 활짝 열린다.
사립문, 교문, 세상의 문에서부터 마음의 문까지도. [Apr. 2016]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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