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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게 되면 선해진다

[차 한잔]

by 지구촌사람 2016. 11. 21.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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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종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2016 개정판, RH코리아


사랑하게 되면 선해진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 저자 도종환의 말이다.

 

어떤 사정으로든 사람이 홀로 있게 되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주변을 찬찬히 살핀다. 이윽고 깨닫는다. 나의 존재는 주변의 그 무엇들 덕분이라는 것을. 나무와 풀, 공기, 애완동물... 그리고 숱한 이웃들과 먼 곳의 이름 모를 사람들 덕분에 내가 존재할 수 있고, 그 무엇들로부터 한없이 도움을 받아오고 있었음을 배운다. 깨친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그 모든 것들을 진정으로 껴안게 된다.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게 되면 행복이 무엇인지를 새삼 절실히 깨닫게 되고, 그래서 더욱 선해진다. 사랑하는 이들은 주변을 환하게, 밝게, 맑게, 따뜻하게 만든다. 선한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니, 사랑하게 되면 선해진다.

 

우리들은 너무 빨리 살아간다. 더 빨리 가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얻는 데에 길들여져 온 탓에. 그러다 보니, 천천히 가는 일에 서투르다. 천천히 가면서 가까이 있는 것들에 눈길을 주고, 손으로 쓰다듬거나 안으며 말 걸기를 하는 일이 드물다. 우리들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그냥 스쳐 보내는 삶을 당연하게 살아왔다. 멈춰 서서 들여다보며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는 일 따위를 건너뛴 채 마냥 내달려왔다.

 

*

바쁘게 살아온 우리는 일부러라도 천천히 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여전히 바쁜 삶에 쫓기듯 살아가야 하므로. 죽음을 앞둔 이들이 최고의 인생 철학자가 되는 일, 드물지 않다. 홀로 있음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해서 홀로 있게 되기, 그걸 고독력(solitude)으로 부르는 이도 있다. 타의/환경에 의해서 우연히 고독해지는 쓸쓸함(loneliness)과는 다르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으로 고독해질 필요도 있다.

 

이 책에는 도 시인이 몸이 좋지 않아서 시골로 내려가 정양을 해야만 할 때, 새삼스레 주변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담겨 있다(2004년 발간판의 개정판이다). 위에 적은 것처럼 풀 하나, 나무 한 그루, 촌로, 이웃에서부터 회한으로 남은 사모가(思母歌) 들까지.

 

이 책을 대하면, 불현듯 몇몇 외국 저자들의 책이 떠오른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든가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 그리고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따위가 그것이다. 루게릭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브랜다이스 대학의 노교수 모리 슈워츠를 매주 화요일마다 찾아가서 나눈 이야기를 담은 앨봄*<모리와 ~ >는 세계적인 명저가 되었다. 췌장암으로 새파란 나이라 할 수 있는 48세에 유명을 달리한 랜디 포시(카네기멜론대) 교수는 생의 마지막까지 강의를 했고 그걸 육성으로 남겼다. 그가 했던 말 “Experience is what we get when you don't get what you wanted(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깨달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짜) 경험이다.)”는 우리나라의 모 드라마 대사로 쓰일 정도로 우리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파인만 씨 ~>는 또 다른 인생 훈육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에게 행복한 것,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을 하라는 쪽으로 요약된다. 이 책의 주인공 리처드 파인만은 미국에서도 기인에 속할 정도의 천재 물리학자인데, 그 또한 오랜 암 투병 끝에 죽었다(1988). 칼텍에서 그의 영결식이 열렸을 때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기념우표까지 발행된 것으로 기억한다. 확실하진 않지만.

 

이런 책들이나 도 시인의 이 산문집이 한 곳에서 만나는 지점. 그것은 지금 현재, 바로 지금의 삶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이다. 현재의 삶은 과거와 지금의 여러 사람과 사물 덕분에 이뤄진 것이라는 그 간단한 사실을 고마워하고 감사하라는 극히 간단한 메시지다. 현재의 행복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그 행복을,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사물에게도 나누라는 메시지다.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는 이들은 감사할 줄도 알게 된다.

 

*

이 책은 짧은 꼭지들의 글을 모아놓았다. 시간에 쫓기는 이들에게도 적당하고, 긴 글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부담스럽지 않다. 그리고, 어느 곳을 어떻게 읽어도 된다. 무순으로 아무 곳을 펼쳐 읽어도 된다.

 

이 책은 또 아주 이쁜 게 있다. 책값이 14,000원 정도이면 이런 단단한 하드커버로 장정하기가 쉽지 않은데, 곁에 두고 오래 읽거나 선물용으로도 쓰이라는 뜻인지, 출판사가 애정을 보태서 값나가는 장정으로 꾸몄다.

 

, 책을 읽다 보면, 사람들마다 바라보는 시선이 참으로 다르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어떤 사연 때문인지 도 시인은 박태기나무를 엄청 비하(?)한다. 꽃모양에서부터 개화시기에까지 시비를 걸면서. 하하하. 내게는 참 이쁜 꽃인데... 시골 논둑이나 집 뒤꼍 등에도 심고, 야트막한 산자락에서 반갑게 맞이해주는 것으로, 벚꽃이 질 무렵에 환하게 밝히는 그 꽃들은 내 기준으로는 환장하게 이쁘다. 아래에 굳이 사진을 매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옥에 티. 우리나라의 작가나 시인들이 대체로 맞춤법/띄어쓰기를 잘 점검하지 않는 데에서는 용감무쌍할 정도라서 (특히 시인들이) 나는 시인들의 산문을 대할 때 좀 꼼꼼하게 훑어보는 편인데, 다른 이들에 비해서는 그래도 편집진에서 신경을 쓴 게 엿보인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부주의(?)가 눈에 띄었다. ‘국화냄새’, ‘악기소리같은 건 한 낱말의 복합어가 아니다. ‘국화 냄새악기 소리등으로 띄어 적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 작가들의 글 어디에서고 눈에 띌 정도로 흔한 띄어쓰기 무시 사례에 속한다. 참고삼아 예를 들었을 뿐이다.

 

맞춤법에 어긋나는 걸 그대로 둔 건, 좀 심했다. 예를 들면, ‘달디단 향기’ ‘봄 뜨락에 심겨 있는따위가 그 예인데, 이것은 각각 다디단 향기봄 뜨락에 심어 있는으로 적어야 한다. 특히 심겨 있는과 같은 억지 피동 표현들이 일반적으로 흔한데, 그럴 때는 심기다라는 동사가 있는지를 떠올려 보면 도움이 된다.

 

[*: 미치 앨봄의 또 다른 마지막경험자의 실화를 다룬 것으로는 <8년의 동행>도 있다. 2000년의 어느 봄날, 앨봄은 어릴 적 다녔던 유대교 회당의 랍비인 앨버트 루이스로부터 자신의 추도사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그 뒤 8년에 걸쳐 그와 신, 믿음, 삶과 인간애에 대한 긴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걸 모은 것들. 랍비 루이스의 평범한 진리(?) 설파 이야기도 감명 깊지만, 그 덕분에 알게 되는 흑인 목사의 선행도 큰 감동으로 남는다.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다.] -溫草

[Nov.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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