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마디 My Words 179]
고려자기를 요강으로 쓴다고 저절로 품격이 올라가는 건 아니다 [온초]
KBS 프로그램 <명품 진품>을 볼 때입니다.
어느 지방의 출장 감정에서, 괜찮은 고려자기 주병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병의 색깔이 좀 이상했습니다.
아래로부터 2/3 정도가 윗부분의 색깔보다 까맸습니다.
감정위원이 그걸 사용해 왔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하면서
선대 때부터 죽 간장병으로 사용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위원은 꽤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괜찮은 것인데, 간장병으로 얼마나 오래도록 사용해 왔는지
간장 색깔이 병에까지 스며들어, 본래의 아름다운 색을 잃어버리고
그 바람에 감정 가격도 최하품 가격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감정위원이 더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자 그 시골분이 이랬습니다.
-아하. 그래서 우리 집 간장 맛이 그토록 맛있다는 소릴 들어왔군요.
감정 가격이 낮아도 괜찮습니다.
간장이 이런 좋은 병에 담겨왔으니, 우리가 제대로 대우해 온 셈이구먼요.
앞으로도 계속 간장 맛이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수더분해 보이는 촌로에다, 말씨까지 조금은 어눌해 보이시던
그분의 얼굴을 저는 다시 한 번 올려다봤습니다.
*
고급 외제 차, 수십 억대의 빌라, 명품 옷/신발/치장품...
그런 것들로 외양을 꾸미는 이들, 꾸미려는 이들, 많습니다.
소유 부동산의 크기로 은근히 부를 과시하거나 행복을 맹신하는 이들, 많죠.
그것들이 죄다 헛것이라는 것, 외부로 드러내려는 생각이 바닥이 깔린 것들일수록
참 행복과는 거리가 멀고 도리어 진짜 알맹이에서 풍기기 마련인
품격과는 거리를 벌리는 일이라는 것쯤은, 머리가 조금만 커도 알 수 있는데...
평생 그 끈을 놓지 못한 채, 늘 찡그린 얼굴로 살아내는 이들 적지 않죠.
고려자기를 요강으로 쓴다고 해서 품격이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는 걸 뻔히 아는 사람들이 여전히 그런 짓에 매달리는 것,
그 또한 참으로 불가사의입니다.
소위 재벌가 사람들이라는 자들이 흩뿌리는 온갖 잡음들이
이제는 공공의 적인 소음 수준입니다.
참으로 불쌍한 이들입니다. 참 행복이 뭔지, 조금만 생각했더라도
그런 악취 나는 오물탕에 뛰어드는 일들은 없었을 텐데요.
사람은 그릇대로 만들어집니다.
주둥이가 좁으면 시야도 좁아지고, 되바라진 모양이면 사람도 그리되죠.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그릇의 모양이 어떻든,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 하는 것.
고려자기에 오줌을 담는 이도 있고, 위의 예에서처럼 소중한 간장을 담는 이도 있지요.
작고 비뚤어진, 잘못 만들어진 그릇 같아서 보기에는 좀 그렇지만
보석류가 담겨 있는 경우도 있고요.
얼마 전 작고한 그 괴상한 겉모습의 스티븐 호킹스는
대단히 잘못 만들어진 자기만 같아서 즉시 파쇄되어도 좋을 외형이었음에도
그 안에 우주를 담고 살았죠.
-溫草 [Ap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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