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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털이’와 ‘재떨이’의 차이를 아시는지요?

우리말 공부 사랑방

by 지구촌사람 2013. 3. 1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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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一事一思]      ‘재털이’와 ‘재떨이’의 차이를 아시는지요?

 

‘-떨이’와 ‘-털이’의 구분

 

[예문] 담뱃재는 떠는 거지 터는 게 아니니까, 재떨이가 맞을 걸 : 맞음.

          먼지는 흔들어서도 떨어지니까 먼지털이도 맞는 말 아닌가 : 먼지떨이의 잘못.

 

[설명] 예문 자체가 재털이(x)/재떨이(o)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음. 즉, ‘털다’는 ‘밤을 털다/이불을 털다’에서처럼 ‘달려 있는 것, 붙어 있는 것 따위가 떨어지게 흔들거나 치거나 하다’이고, ‘떨다’는 ‘달려 있거나 붙어 있는 것을 쳐서 떼어 내다’는 뜻이므로, 담뱃재가 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담배를 붙들거나 잡고서 ‘흔들거나 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의 경우에는 단순히 털기만 해서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털다’ 대신 ‘떨다’를 선택하여 ‘재+떨이=담뱃재+떨이’로 한 것임. ‘옷/이불을 털어 먼지를 떨다’와 '밤은 털고, 콩/깨는 떨고'를 생각해보면 이 두 말의 차이점이 명확해질 것임. 즉, 단순히 흔들거나 치는 동작뿐만 아니라 ‘떼어내는’ 결과까지 아우르는 말이 ‘떨다’이므로 ‘-떨이’를 택한 것임. 그러므로, ‘먼지털이(먼지를 떠는 기구)’ 역시 털어서 떨어내는 것이므로 ‘먼지떨이’여야 함.

 

[참고] 현재 ‘-털이’를 붙인 것은 훔치는 것과 연관된 것들뿐임. ¶밤털이≒밤도둑/은행털이/빈집털이.

 

재떨이? ≒담뱃재떨이.

먼지털이? ‘먼지떨이(먼지를 떠는 기구)’의 잘못.

이슬떨이? ①≒이슬받이(이슬이 내린 길을 갈 때에 맨 앞에 서서 가는 사람). ②이슬을 떠는 막대기.

주머니떨이? ①여러 사람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내어, 술 따위를 사 먹는 장난. ②주머니 속의 물건을 훔침. 또는 그런 짓을 하는 사람.

 

  졸저 <고급 한국어 학습 사전>에 별책 합본으로 처리한 것으로 <우리말 바루기>가 있다. 어휘 부분만으로도 책 두께가 만만치 않아서 출판사 쪽에서 곤란해 하는데도 우기다시피 해서 합친 부분이다.

  공부하는 이들이 어휘 부분과 맞춤법/띄어쓰기를 따로 하려면 그 수고와 정성이 두 배로 들기 때문에, 한 권으로 전부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보니, 맞춤법/띄어쓰기 부분의 원고량 조절이 급선무가 되었다. 뭘로 채울 것인가가 아니라 뭘 빼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했다. 그래서 우선 한 게 설명의 간략화였고, 관련 낱말 해설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고급 부분은 넣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았고, 다른 우리말 바루기 책자에서 약방의 감초 격으로 다루는 낱말들도 기본 수준으로 여겨서 생략했다. 오로지 지면 절약을 위해.

  저 위에 보인 ‘재떨이’와 ‘재털이’ 관련 설명도 그런 사유로 희생(?)된 사례에 든다. 하여, 그렇게 애꿎게 희생된 녀석들을 위로할 겸 하여 요즘 그런 것들을 전부 집어넣고 설명을 좀 더 보탠 가제 <고급 한국어 바루기> 작업의 마무리에 매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 또한 500여 쪽을 훨씬 넘어설 듯하여 그 두께 걱정부터 하고 있다. 두꺼워지면 책값이 올라갈 게 뻔한 터라. 저자라는 녀석이 내용보다 책 두께를 신경 쓰고 있다. 한심하게도.

 

                                                               *

  이제 왜 재떨이가 맞는지, 어째서 먼지떨이라는 말이 표준어로 선택되었는지 그 까닭을 너끈히 짐작들 하시리라 믿는다. 그리고, ‘털다’와 ‘떨다’의 차이에 대해서도.

 

  우리 삶에서도 그런 차이가 알게 모르게 크게 작용한다. 어두운 시간들에 대한 기억들, 고통의 순간들, 잊고 싶거나 묻어 버리고 싶기만 한데도 떠오르는 지난 시간들을 자기 나름으로는 털어낸 듯한데,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을 때가 많다.

  턴다고 털기를 제법 여러 번, 또는 힘들여 한 것 같은데, 완전히 떨어내질 못한 것이다.

 

  재떨이를 비우고 닦을 때가 있다. 휴지로 대충 닦아도 깨끗해질 때가 있지만 어떤 때는 시커먼 니코틴 자국 하나가 죽어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완강히 버틸 때도 있다. 그것도 구석 자리에서.

  그때 내가 발견한 비법(?)이 있다. 그건 그 재떨이를 수도꼭지 아래에 대고 물을 살살 흘러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휴지 따위에는 그토록 완강히 저항하던 그 땟자국도 슬그머니 꼬리를 거둔다. 마른 땟자국에서 완전히 긴장을 풀게 한 것은 천천히 흐르는 물이었다.

 

  우리들의 딱딱한 삶에서 모질거나 혹독하게 맺힌 혹이나 응어리, 혹은 단단히 굳은 앙금을 없앨 때도 이 방법은 효과가 있다. 도려내거나 뽑아내면 상처가 남지만, 살살 액성으로 달래면서 시간을 조금 주고 기다리면 녹거나 뿌리가 뽑힌다.

  그런 삶의 지혜가 응축된 게 조상들이 발명한 고약이라던가. 단단하게 굳은 것을 뽑아내기 위해 반액체 상태의 부드러운 것으로 대응하는 방법 말이다.

 

                                                                  *

  우리들의 삶에서 털어내야 할 것들은 적지 않다. 먼지일 듯만 싶어서 털기만 해도 될 듯하지만, 완전히 떨어내야 할 것들이 놀랍게도 많다. 털어내는 것으로는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것들도 적지 않고.

  가지치기라는 게 있다. 과수의 웃자람을 막고 실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 불필요한 곁가지들을 잘라주는 일이다. 예전에는 전지(剪枝/翦枝)라든가 전정(剪定/翦定)이라는 어려운 한자어를 썼지만, 요즘에는 가지치기나 가지다듬기와 같은 토박이말을 더 많이 쓴다.

 

  우리의 삶에서 재떨이에 낀 완강한 때처럼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은 대체로 삶의 곁가지에 붙어 있다. 우죽도 아니고 우듬지도 아닌 것에 붙어 있는 것들이 그 모양으로 속(?)을 썩인다.

  그럴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다. 싹둑 잘라내 버리면 된다. 나는 그것을 ‘삶의 곁가지 치기’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과거 자르기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좋은 기억은 이미 좋은 밑거름으로 녹았다. 제대로 쓰이고 있으니 돌아볼 필요가 없다. 말썽꾼은 과거의 나쁜 기억들이다. 그것들은 잘라내지 않으면 삶의 구석에서 독버섯으로 자랄 때도 있다.

 

  재떨이 앞에서 삶의 곁가지 치기를 떠올리기. 어쩌면 말장난 내지는 언어유희라고 할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절실한 느낌으로 삶을 직시할 때 이따금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거나 주시하는 일이다.

  그 폭과 깊이가 대단하면 대단할수록 대우(?)도 높아진다. 대선사님들처럼 대각을 하고 나서 게송 하나씩을 멋들어지게 읊을 정도가 되기를 바랄 수야 없겠지만, 어떤 언어고 간에 오래 똑바로 주시하다 보면 작지 않은 가르침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재떨이 하나를 두고,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지만. 하하하. [Ma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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