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준어와 사투리, 그리고 속어/비어/은어
[문] 낱말들을 대하다 보면 가끔 이게 표준어인가 싶어 의아해지는 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꼽사리/삥땅’, 그리고 ‘구닥다리/깡다구/꼰대/대빵/도깨빗국/빠구리/야코죽이다/얍삽하다/짝퉁’과 같은 것들이 그것인데 이 중에 표준어가 아닌 것이 있는지요? 제 생각엔 ‘꼽사리/삥땅/얍삽하다’ 같은 말은 아무래도 사투리(방언) 같습니다만.
또, 절간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제게 말하길 절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걸 ‘향고양’이라고 돌려 말하고, 술은 ‘반야탕’, 육류는 ‘도끼나물’, 생선은 ‘칼나물’ 등으로 재미있게 말한다고 하던데, 이런 말들도 표준어에 속하는지요?
그리고 만약 ‘구닥다리/깡다구/꼰대/대빵/도깨빗국/빠구리/야코죽이다/짝퉁’과 같은 이상한 말들조차 표준어에 속한다면 표준어의 기준이 무엇인지요? 비속어도 표준어에 속하나요? 비속어는 표준어인가요, 아니면 사투리(방언)인가요?
[답] 우선 물으신 것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고, 나머지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 별도로 적겠습니다.
‘꼽사리/삥땅/얍삽하다/짝퉁’도 표준어이며, 질문하신 낱말 중에서는 ‘꼰대/도깨빗국/대빵’, 그리고 절간 용어 중에서는 ‘반야탕/칼나물’ 등만 표준어가 아닙니다. 이 다섯 낱말들은 은어이기 때문에 표준어에 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밖의 비어나 속어 등은 표준어에 포함됩니다. 상세한 설명은 아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표준어(標準語)’란 한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으로서의 언어를 말한다.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표준어에서 제외되는 것은 ‘방언(方言)/사투리’이다.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말이므로,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의 질문에 포함된 낱말 중에는 일단 사투리는 없다.
두 번째로는 ‘현대 서울말’이므로 ‘고어(옛말)’는 표준어에 들지 못한다. 고어(옛말)란 정의에서 보듯 ‘오늘날은 쓰지 아니하는 옛날의 말’이므로 현대 말인 아닌 까닭에 표준어에서는 제외된다.
세 번째로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에 미달하는 것으로는 ‘은어/변말’이 있다. ‘은어(隱語)’란 어떤 계층/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자기네 구성원들끼리만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을 뜻한다. 사회 계층이나 집단에 따라 분화된 일종의 계층 방언이라 할 수 있다. 상인․학생․군인․노름꾼․부랑배 따위의 각종 집단에 따라 다른데, 의태어․의성어․전도어(顚倒語)․생략어․수식어 따위로 그 발생을 나눌 수 있다. ‘변말’이라고도 한다.
예컨대, 위에 나온 말들 중 ‘반야탕/칼나물/꼰대/대빵/도깨빗국’을 변풀이(은어나 속어를 그에 해당하는 일상어로 푸는 일)하면, 각각 ‘술/생선/늙은이(선생님)/크게/술’을 뜻하는 은어다. ‘반야탕/칼나물’은 주로 승려들 사이에서 쓰이는 말이고, ‘꼰대/도깨빗국/대빵’은 부랑배나 일부 학생, 그리고 교도소 등에서 쓰인다. 즉, 일정 부류의 사람과 계층 사이에서만 쓰이는 말이어서 온 국민이 그 말뜻을 알아들을 수는 없는 그런 말들이다. 이런 이유로 ‘반야탕/칼나물/꼰대/대빵/도깨빗국’ 등은 표준어에 들지 못한다.
[참고] 같은 절간 용어인데도 ‘향고양’과 ‘도끼나물(≒도끼버섯)’은 왜 은어에서 제외되었을까 : ‘향고양[香供▽養]’은 ‘①부처 앞에 향을 피움. ②절에서 담배를 피움’을 뜻하는 말인데, 부처 앞에 향을 피운다는 본원적인 의미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2차적인 뜻까지 파생된 일종의 불교 용어이다. 즉, 일차적 의미로는 어엿한 불교 용어에 속한다.
‘도끼나물≒도끼버섯’은 ‘절에서, 쇠고기 따위의 육류’를 이르는 말로서, 승려들 사이에서만 은밀히 통용되는 말이 아니라 절의 일을 도와주거나 관계하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이는 말인 까닭에, 특정인들 사이에서만 폐쇄적으로 쓰이는 은어라고 보지 않은 것이다.
은어 중에서도 특히 죄수들과 심마니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은어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말들이 많고, 심마니들의 그것이 가장 어려운 편이다. 그중 몇 가지를 맛보기 삼아 각각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 표기가 표준어이다.
♣ 죄수들의 은어 : 큰집(‘교도소’); 빵(‘감방’); 국수(‘포승(捕繩)’); 은팔찌[銀-](‘수갑’); 사진관[寫眞館](‘면회실’); 범털(‘부자이며 지적 수준이 높은 죄수’); 개털(‘돈이나 뒷줄이 없는 사람’); 범털방(‘범털’을 수용한 감방); 쥐털방(‘살인범/강도범 따위의 흉악범을 가둔 방’); 뻑치기(‘노상강도’); 넥타이공장(‘교수형을 집행하는 곳’); 돌밥(‘사형 집행 전에 마지막으로 주는 밥’); 뒷문가출옥[-門假出獄](‘교도소에서의 죽음’); 보리가마니(‘무기 징역’); 날명(‘변명’); 강아지(‘담배’); 개꼬리(‘담배꽁초’); 기생지팡이(‘담배 또는 몰래 피우는 담배’); 간땡이(‘간수 몰래 규칙을 어기며 피우는 담배’); 왕왕이(‘라디오’); 꽁시다이(‘보리밥’); 걸짱(‘밥을 담는 깡통’); 사뎅이(‘넷째 등급의 밥’); 매미(‘술집 접대부나 몸 파는 여자’); 수꿈(‘상상’); 암꿈(‘밤에 자면서 꾸는 꿈’); 달다(‘얻다’).
♣ 심마니들의 은어 : 부리시리/방초[-草](‘산삼’)*; 다말(‘산삼의 씨’); 반들개(‘산삼의 새싹’); 내피(‘이 년생 산삼’); 카쿠(‘3년이 안 된 산삼’); 오구(‘5년생 산삼’); 두닢쌍대(‘잎이 둘 난 산삼’); 세닢부치(‘잎이 셋 난 산삼’); 초마니(初-. ‘초년생 심마니’); 천동마니(‘풋내기 심마니’); 노마니(老-. ‘노련한 심마니’); 선채마니(善採-. ‘산삼을 잘 캐는 능숙한 심마니’); 어이님(‘산삼 캐기에 경험이 많고 능숙한 사람’); 멧집짓다(‘산에 오르다’); 메대기/태기망태/주루목(‘산삼 넣는 망태기’); 한삼(‘산삼 채취의 한 행보’); 도시리(‘길’); 모새(‘쌀’); 무림/무리미/무리니(‘밥’); 욱키/우크미/우끼미(‘물’); 어리광이(‘술’); 두루바리/구레미(‘범’); 곰페/넘패/넙대/넙대기/넙대마니(‘곰’); 누룽이/우워치/웅어지/웅지/웅치(‘소’); 귀애기/기애기/끼애기/끼야기(‘닭’); 송쿠/노승(老-. ‘쥐’); 진대마니(‘뱀’); 노래기/빗치(‘해’); 괭가리(‘달’); 굴겁사리/굴걱치/굴개피(‘옷’); 되나지(‘똥’); 쩔렝이(‘돈’); 기둥저리(‘다리’); 논다리(‘피’); 달1(‘불’); 달2(‘씨’); 딸(‘성냥’).
[참고] ‘심봤다!(감탄사)’에서의 ‘심’ : 이때 쓰인 ‘심’은 ‘인삼(人蔘)’의 옛말이며, 산삼을 뜻하는 은어가 아니다. 산삼은 심마니들 사이에서 ‘부리시리/방초’ 등으로 불린다. 아울러 ‘심마니(산삼을 캐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는 표준어이며, ‘심메(산삼을 캐러 산에 가는 일)‘나 ’삼딸(蔘-. 인삼의 꽃/열매)‘ 또한 표준어로서, 심마니들의 은어가 아니다.
참고로, 산삼과 관련된 표준어 몇 가지를 정리하여 보이면 아래와 같다. 요즘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산양삼(山養蔘)/지종삼(地種蔘)’ 등의 용어는 현재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말들이다.
심마니? 산삼을 캐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
심메? 산삼을 캐러 산에 가는 일.
삼딸[蔘-]? 인삼의 꽃/열매.
심봤다?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하였을 때 세 번 외치는 소리.
동자삼[童子蔘]? 어린아이 모양처럼 생긴 산삼.
마당삼[-蔘]? ①한곳에 뭉쳐나 있는 산삼. ②집 마당에 난 삼.
장뇌삼[長腦蔘]? 사람이 기른 산삼. 산삼의 씨를 깊은 산속에 뿌려 야생 상태로 재배한 것.
일각삼[一角蔘]≒양각삼[羊角蔘]? 좋지 못한 삼.
노당삼[路棠蔘]? 중국에서 들어온 인삼. 또는 중국산 인삼.
천종산삼[天種山蔘]? 자연적으로 깊은 산에 나는 산삼. 산삼 중 최고급.
* 위의 내용은 근간 예정인 가제(假題) <우리말 힘이 밥심보다 낫다 -배워서 남도 주자> 초고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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