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에 오르지 못한, 공인되지 않은 토박이말 : 가온, 다솜, 미리내
(1) ‘가온’은 독립어로 쓸 수 없는 말이다
[문] 우리 동네의 학교 이름이 ‘가온초등학교’입니다. ‘가온호수공원’도 있었는데, 지명이 들어가는 게 좋다는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지금은 ‘00호수공원’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온’이란 말이 멋있기도 하지만 그 진짜 의미가 뭔지 궁금하여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 국어대사전을 찾아보았는데, ‘가온’이란 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이를 ‘중앙초등학교’라는 한자어 표기보다 아름다운 우리말 표기라고 하더군요. 맞는 말인지요?
[답] 몇 가지 문제가 엉켜 있는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선 사전 등재와 관련하여 살펴보자면, 현재 학교뿐만이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임의로 사용하고 있는 ‘가온’이라는 말이 독립어로서 사전에 오를 수 없는 말인 것은 사실입니다.
본래 이 ‘가온’이라는 말은 중세국어에서 ‘가운데’를 뜻하는 ‘가온?’에서 온 말입니다. 그런데 ‘가온?’에서 ‘-?’를 뺀 ‘가온’만으로는 ‘가운데’를 뜻하는 온전한 독립어가 될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즉, 현대어 ‘가운데’에서 ‘-데’를 뺀 ‘가운’만으로는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입니다.
*[주] : ?로 표기된 것은 'ㄷ+아래아+ㅣ' 꼴의 고어인데, 옮겨오기에서 고어 표기가 되지 않은 탓임.
현재 사전에 등재되어 표준어로 쓰이고 있는 말들에는 ‘가운데톨(세톨박이 밤의 중간에 박힌 밤톨)’, ‘가운데골(≒중간뇌)’, ‘가운뎃줄(큰 연이 뒤집히지 않도록 연의 귀, 꽁수, 허리의 세 달이 교차되는 중심에 덧붙여 맨 줄)’, ‘가운뎃집(삼 형제 가운데서 둘째 되는 사람의 집)’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보면, 모두 ‘가운데-/가운뎃-’ 꼴을 갖추고 있습니다. 즉, 낱말로서 온전하게 기능하려면 ‘-데’가 꼭 필요한 형태소지요.
따라서 ‘데’가 없는 ‘가온’은 불완전한 형태의 어소(語素. 단어를 만드는 요소)일 뿐이기 때문에 독립어로 사전에 오르지 못한 것인데, 접두어 기능으로는 쓰이고 있습니다. 예컨대, 음악 용어인 ‘가온음(음계의 제3음. 으뜸음과 딸림음 사이에 있음)/가온음자리표/가온화음’ 등은 표준어입니다. 또한 국립국어원도 ‘가온’을 접두어로 사용하여 ‘컨트롤타워(control tower)’의 우리말 순화어를 ‘가온머리’로 하기로 했습니다(2005. 6. 28).
질문과 관련하여, 정작 문제는 학교 이름으로 쓰인 ‘가온’이 접두어 기능인가 하는 점인데, 학교의 종류 앞에 붙는 명칭*은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접두사로 보기 어렵습니다. 즉, ‘가온초등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중앙초등학교의 뜻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가온’이라는 낱말 자체가 사전에 없는 말이기 때문에, 현재로는 그저 발음만 빌어다 써놓은 뜻 모를 고유명사 혹은 수의적(隨意的. 자기 마음대로 한) 조어 명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온’이 온전하게 뜻이 부여된 낱말 대우를 받으며 독립어로 사전에 오를 때까지는 그렇습니다.
[참고] 학교의 종류 앞에 붙는 명칭 : 예컨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중학교’의 경우 이를 줄여 ‘서울사대 부속중학교’로 적을 수 있고, 기관은 단위별로 붙여 적을 수 있으므로 ‘서울사대부속중학교’로 적을 수도 있는데, 이때 부속 중학교 앞에 붙는 ‘서울사대’는 고유명사이며 접두사가 아니다. ☞상세 사항은 ‘고유명사 붙여 쓰기 허용’ 항목 참조.
‘가온’과 관련하여 참고로, 인터넷에 떠도는 순우리말 항목 중에 ‘가온누리’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세상의 중심이 되어’라는 뜻이라면서 가운데를 뜻하는 ‘가온’과 세상을 뜻하는 ‘누리’의 합성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가온누리’는 없는 말일 뿐만 아니라, ‘세상 가운데’를 뜻하려면 어순조차도 ‘누리가운데’가 되어야 하므로 ‘누리가온’이어야 하고, 이때의 ‘-가온’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 가운데를 뜻하는 말로는 표기상 흠이 있어서 쓸 수가 없습니다. 다만, ‘가온-’을 접두어로 쓸 경우 ‘가온누리’는 가능한 조어법이지만, 이 ‘가온누리’는 ‘가운데 세상’이나 ‘중간 세상’이라는 어정쩡한 뜻이 될 뿐으로 세상의 중심 따위와는 거리가 먼 말이 되겠습니다.
‘가온누리’와 같이 검증되지 않았거나 전거도 불분명한 말들이 순우리말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 몇 가지를 예로 들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모두 다 사전에 없는 말들이며, 수의적(隨意的. 자기의 마음대로 하는) 조어로 생산된 비표준어들로서 방언과도 거리가 멀다. 즉, 임의로 조립된 사생아 낱말들이라 할 것들로, 도리어 올바른 우리말(표준어)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해야 한다.
여우별 : ‘궂은 날에 잠깐 나왔다가 숨는 별’을 뜻하는 수의적 조어. ⇒‘닻별≒카시오페이아자리(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의 맞은편에 있는 ‘W’ 자 모양의 별자리)’과 ‘여우비(볕이 나 있는 날 잠깐 오다가 그치는 비)’에서 임의로 유추한 듯하다.
예그리나 : ‘사랑하는 우리 사이’를 뜻한다는 전거 불명의 말. ⇒‘예+그리나’로 분석해도 ‘여기서/예전을 그리워하지만’ 정도로만 추정되며, ‘사랑하는 우리 사이’라는 뜻에는 이르지 못한다. 전혀 전거 없는 조어이며, 추정컨대 이 조어는 1962년 ‘옛과 어제를 그리며 내일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으로 창단된 ‘예그린악단’(서울시 세종문화회관 소속 악단의 하나)의 명칭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다. 참고로, 현재 이 ‘예그린’이라는 상호를 사용하고 있는 각종 업체들은 거의 난립 상태다.
라온제나 : ‘즐거운. 나온’을 뜻한다고 하지만, 낱말로 성립되지도 않는 말. ⇒가장 무책임한 유포어 중의 하나로서 ‘라온’은 두시언해에서 ‘슬프며’의 상대어로 보이는 ‘라온’을 취한 것이고, ‘제나’는 ‘제(‘저’에 조사 ‘가’가 붙을 때의 형태)’ + ‘나(선택을 뜻을 더하는 보조사)’로 분석되는 말로서 ‘자기나, 자기 자신이나’를 뜻하는 말. 따라서 이 ‘라온제나’는 조어법상 한 낱말이 될 수도 없을 뿐더러 뜻조차도 뒤죽박죽이어서 무책임한 엉터리 조어의 표본 격이라 할 수 있음.
해찬솔 : ‘햇빛이 가득 차 더욱 푸른 소나무’를 뜻한다는 수의적 조어. ⇒굳이 이러한 표현을 쓰고자 할 경우에도 ‘해 찬 솔’로 띄어 적어야 하며, 이 경우에도 ‘더욱 푸른’의 뜻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린나래 : ‘그린 듯이 아름다운 날개’를 뜻한다는 수의적 조어.
길가온 : ‘길 가운데’를 뜻한다는 수의적 조어. ⇒‘가온-’은 접두어로 쓰일 때만 ‘가운데’의 의미를 지닌다.
제돌이 : ‘자전(自轉)의 북한말’이라고 하나 북한어에 ‘제돌이’는 없다.
해지개 : ‘해가 질 때 지평선/산을 넘어가는 곳’을 뜻하는 수의적 조어.
헤벌심 : ‘입 따위가 헤벌어져 벌쭉한 모양’을 뜻하는 수의적 조어.
가을귀 : ‘(비유) 가을의 예민한 소리를 들어내는 섬세한 귀’를 뜻한다는 수의적 조어.
홀림길 : ‘어지럽게 갈래가 져서 섞갈리기 쉬운 길’의 수의적 조어.
가리매 : ‘실내에서 편히 입을 수 있게 만든 옷. 위아래가 통으로 되어있고, 단추가 없이 그냥 둘러 걸쳐 허리띠를 매게 되어 있는 것’을 뜻한다는 수의적 조어. ⇒일본 옷 ‘하오리(羽織)’의 우리말 설명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위와 같은 문제적 조어 낱말들과는 다른 경우로,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하자는 취지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한자어인 ‘은하수’와 ‘용(龍)’ 대신에 각각 ‘미리내’와 ‘미르’를 쓰자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잘못이다. ‘미리내’와 ‘미르’를 공인된 토박이말로 넘겨짚은 실수가 관련되어 있다.
‘미리내’는 ‘은하수(銀河水)’의 제주도 방언이다. 즉, 현재 사전의 표제어에 표준어로는 등재되어 있지 않은 말이다. 또한 ‘미르’는 ‘용’을 뜻하기는 하지만 고어(옛말)이다. 고어는 표준어에 들지 못한다. ‘미리내’는 ‘미르(龍)+내(川)’ →‘미리내(용이 노는 강)’의 과정을 거쳐 이뤄진 말이므로 표준어로 삼아도 된다는 일부 주장도 있으나, 현재로는 ≪표준≫의 표준어로 채택되고 있지 않다. 즉, ‘미리내’와 ‘미르’는 공인된 표준어에 들지 못하므로 사용 시에 유의해야 한다.
참고로, 이처럼 한자어 대신 고유어를 발굴하여 사용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말로는 ‘우박(雨雹)’의 고유어인 ‘누리’가 있는데 ‘누리’는 표준어다. 나아가, ‘우편낭[郵便囊]’과 동의어인 ‘체낭’, 한자어 ‘계관(鷄冠)’으로도 표기하는 ‘볏(닭/새 따위의 이마 위에 세로로 붙은 살 조각)’과 동의어인 ‘변두’ 등도 고유어이고 표준어다.
[정리] ‘가운데/가온-’의 용례
1) ‘가운데/가운뎃’ 꼴의 형태소로 쓰인 말
가운데톨? 세톨박이 밤의 중간에 박힌 밤톨.
가운데귀? 고막의 안쪽 관자뼈 속에 있는 공간.
가운데뜰? 집 안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뜰.
가운데골≒중간뇌[中間腦]? 사이뇌와 다리뇌 사이에 있는 뇌줄기의 부분.
가운데치마? 갈퀴의 위아래 두 치마 사이에 가로질러 갈퀴코를 잡아매는 나무.
가운데어머니? 가운데아버지(아버지의 삼 형제 가운데 둘째 되는 사람)의 아내.
가운뎃줄? 큰 연이 뒤집히지 않도록 연의 귀, 꽁수, 허리의 세 달이 교차되는 중심에 덧붙여 맨 줄.
가운뎃집? 삼 형제 가운데서 둘째 되는 사람의 집.
가운뎃점[-點]? 쉼표의 하나. 문장 부호 ‘ㆍ’의 이름. 열거된 여러 단위가 대등하거나 밀접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에 쓴다.
가운뎃다리? ①곤충의 가운데가슴에서 생기는 다리. ②(비유) 남자의 성기.
가운뎃마디? 화살의 윗마디와 아랫마디 사이에 있는 부분.
가운뎃소리≒중성[中聲]? 음절의 구성에서 중간 소리인 모음.
2) ‘가온-’의 꼴로 접두어 어소로 쓰인 말
가온음? 음계의 제3음. 으뜸음과 딸림음 사이에 있음.
가온북? 작은북과 큰북의 중간 크기의 북.
가온화음[-和音]? 가온음 위의 3화음.
가온혀홀소리≒중설 모음[中舌母音]? 혀의 가운데 면과 입천장 중앙부 사이에서 조음되는 모음.
가온음자리표[-音-標]?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 사이에 있는 음자리표. 표의 가운데가 ‘시22(C)’ 음이 되며, 흔히 기악 악보에 쓴다.
가온머리? ‘컨트롤타워(control tower)’의 순화어. [계속]
Ⓒ최종희. 이 글은 출판사와의 협약에 따라, 저작권이 설정되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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