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한2온, 혹은 6한1온이라는 신어가 사전에 오를 정도로
추운 날씨가 늘어나는 바람에 더욱 스산해지고 을씨년스러운 요즘
우리 집에 훈기를 보태는 녀석들이 있다.
위의 사진 속 모습들.
차례대로 게발선인장, 원예종 제라늄, 천리향(서향)이 피워올린 꽃들이다.
꽃들에게도 사연이 있다. 저마다......
개별적으로든 객관적으로든
녀석들을 낱개로 직접 접촉해 보면 전해지는
그런 것들이 꼭 있다.
사람을 낱개로 직접 접해 보면 그렇듯이.
왼쪽 사진은 지난 크리스마스 때 처가에 들렀을 때, 문갑 위에 무성하게 피어 있었던 것.
꽃을 무척 좋아하시던 장모님께 우리가 두어 해 전 사다 드렸던 것 중의 하나인데
주인 없는 자리에 저처럼 화사한 꽃을 피워올리는 바람에
괜히 눈가에 손이 갈 뻔했다.
오른쪽 사진이 우리 집에서 요즘 꽃을 피워올리고 있는 녀석.
녀석은 장모님의 애장품과 사촌이다.
아주 씩씩하게 번지는 바람에, 뿌리나누기를 해서 가져다 놨던 것.
문득, 저걸 대하니 장모님 모습이 어른거린다.
추운 땅속으로 거처를 옮기신 지 벌써 석 달이 넘었구나...
흔히 보는 것 중의 하나인 제라늄.
녀석이 아주 이쁜 것은 일년 내내 수시로 꽃을 피워올린다는 것.
꽃 피우기는 사실 알고 보면 식물들에게 엄청 비장한 삶의 과정이다.
삶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열매 맺기를 위한 몸부림이기 때문.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을 피워 올린다. 그리곤, 생을 마감한다.
1년초 식물들을 보면 그래서 그 모습이 참으로 비장하다.
꽃을 피워올릴 때면, 잎으로 가는 모든 영양분들을 절약하여
줄기와 꽃으로 올려 보낸다. 심지어 꽃을 피워 올리기 위해서
잎을 일부러 절반쯤 고사시켜 버리는 것들도 있다.
흔히 보는 취 종류(참치, 곰치... 등)나 고들빼기, 심지어 냉이와
씀바귀, 망초 같은 것들도 그리 한다.
꽃이 필 때쯤이면, 키가 쑥 솟으며 잎 모양이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되는
냉이나 고들빼기를 대하게 되면, 녀석들의 그런 몸부림은 숭엄하기까지 하다.
식물들에게서 보이는 꽃.
그건 우리들이 손쉽게 이쁘다는 말로 상찬만 하고 넘길 그런 일은 아니다.
마치 피눈물이 밴 이면의 노력으로 무대 위에 올라
단 한 번 각광을 받고 사라지는 배우나 연예인 등과도 흡사하다.
엉뚱한 사설이 길었구낭...
수시로 꽃을 피워 올리는 저 제라늄은 그러므로
사람들이 제 보기 좋자고 식물들의 운명을 손장난으로 바꿔놓은
불쌍한 바보일 수도 있다.
항상 싱글거리는 바보 혹은 순진한 백치의 모습.
그래선지, 녀석들의 꽃잎이나 잎은 철없는 어린애처럼 부드럽다.
참, 사진을 보면 화분이 두 개인 줄로 알지도 모르겠다.
실은 한 화분에 두 녀석을 심었다.
분홍 꽃을 피우는 녀석과 주홍색으로 맞장 뜨는 녀석을.
저 녀석들도 사연이 있다.
당진에 머물 때 뒷집 권사님네 것이 하도 예뻐서
뿌리나누기를 해서 기른 것.
그 중 일부를 다시 장모님께도 나눠 드렸는데
녀석들도 바지런히 꽃들을 피워 올린다.
희한하게도 개화 시기가 우리 집과 똑같다.
우리 집에 분홍 꽃이 피면 장모님도 같은 색이 핀다. 지금도...
이 녀석들은 천리향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녀석.
정식 이름은 서향(瑞香)이다.
요즘 안방 베란다에서 거의 한 달 가까이 아주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향이 가볍지도 않고, 온건하게 달큰하다.
한자 이름이 딱 제 격이라 할 정도로.
녀석은 나와 함께 한 지, 이제 햇수로 5년째.
당진으로 내려가던 해, 다섯 그루를 사서 노지에 심었는데 (맨 아래 사진)
장삿꾼들의 어설픈 손질로 팔려 나온 녀석들이라
두 그루가 죽어서, 그 다음 해에 다시 또 보충하곤 했던 녀석 중의 하나다.
재작년까지도 꽃 숫자가 조금은 부실하달 정도였는데
작년부터는 제법 태가 난다.
마치 중년 부인의 실한 몸매 비슷하게 풍성해졌다.
꽃을 매다는 기간 또한 한참 길어졌고...
덕분에 싱글이가 드나드는 베란다 문을 열 때마다 그 향기가
안방으로도 배어 들어온다. 정신 차려 맡을 때마다
그 은근함에 슬슬 몸까지 배틀릴 정도로 녀석은
자신에게로의 탐취를 유혹한다.
참, 천리향 이야기가 나온 김에...
천리향이 있으니, 그 동생 격인 백리향이나 형님뻘인 만리향도
빼놓을 수가 없다.
백리향은 관목이긴 하지만
높이라고는 겨우 50센티도 안 되게 솟는 편.
대부분 바닥을 기고 있을 때가 많다.
(아래 사진들 중 윗줄 오른쪽 모습 참고.)
백리향은 천리향이나 만리향이 각각
서향과 돈나무의 별칭인 데 비하여, 본명이다.
사향초라는 이름은 한방에서 쓰이는 이름이고.
울릉도에서 보이는 섬백리향이 일품인데, 모습은 백리향과 거의 같고
줄기 끝에서 나오는 새 잎 색깔이 백리향보다 조금 더 진하다.
길게 설명할 수 없지만, 외래 수입종 허브에 못지 않는 국산품.
키우기 만만찮은 로즈마리 같은 것보다는
(두어 해, 혹은 서너 해를 잘 자라다가 원인도 모르게 급사하곤 한다.)
이 백리향을 강추하고 싶을 정도다.
장삿꾼들의 부추김 덕분에 만리향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돈나무.
제주도에 가면 제주 특산종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은 중국이 원산인 것으로 알고 있다.
2004년부터인가, 매년 10월이면 울 공주 생일 기념으로
제주도를 다녀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제주 특산종을 한 가지씩 모셔오곤 한 게 있었다.
감탕나무, 우묵사스레피나무, 돈나무, 제주동백, 그리고 지금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녀석 하나.
그게 5년 동안의 성과. 우묵사스레피나무를 제외하곤 모두 성공했다.
(재작년부터는 장모님 병환도 있는데 우리만 놀러 다닐 수 없어서 중지했고...)
저 위 사진 중 맨 아래 모습이 그렇게 가져온 어린 돈나무를
두 해째 키운 뒤 모습이다.
지금은 키가 60~70센티 정도로 자랐다.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것이라서 작년까지는 겨울엔 실내로 들여놓고 키우다가
올해는 목하 노지 혹한기 극복 훈련 중이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잘 버텨 주고 있다.)
녀석의 향기는 만리향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무척 여리고 은은하다.
가까이서 맡는 것보다는 조금 떨어져서 맡아봐야 제 맛을 느낄 정도로.
여러 송이에서 한꺼번에 뿜어 나오는 향기도 좋지만
한 뭉치쯤으로 좁혀서 맡아보면 더욱 멋있고 맛있는 향기가 된다.
곱게 나이 든, 제대로 숙성된 장년기 여인 같다고나 할까.
이 혹한을 잘 견뎌내고, 머지않아 녀석이 멋진 모습으로
그 향기를 전해주기를 빈다.
내가 아끼는 이들마다 아름다운 결실을 소담하게
이뤄내게 되기를 비는 그 마음을 녀석에게도 얹어본다.
타인을 위해 기도할 때
그 자신이 먼저 평온해지는 법이므로...
[Feb.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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